2015년 여름, Irvine에 공부하러 갔을때 한국에서 4권의 책을 가져갔었다. 그 당시 주로 사용하던 언어였던 자바스크립트 책과, 크리스 앤더슨이 쓴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그리고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권. 그 때 왜 이 책들을 가져 갔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안나지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책들인것 같다. 당시에 괴짜라고만 느껴졌던 일론 머스크는 "꿈은 이루어진다"의 아이콘이 되었고, 지대넓얕 팟캐스트는 공대생인 내가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살면서 누구나 한번 쯤은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주제들을 선정해서 얕게 한 번 파보겠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줄여서 지대넓얕. 110회 여행지 특집. 지금 시작합니다.
지대넓얕 팟캐스트 110회 여행지 특집에서 소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을 읽어보았다. 이 책이 끌렸던 이유는 어려가지가 있는데, 작가가 하루키라는 것, 그리고 양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1Q84>로 잘 알려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949년생이다. 하루키는 일생에 거쳐서 저작 활동을 굉장히 왕성하게 한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장편, 단편, 에세이, 여행기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굉장히 많은 작품이 썼다. <양을 쫓는 모험>은 그의 초기 장편 3부작 중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하루키 소설의 대부분은 상징적인 무언가가 등장하고 이를 바탕으로 굉장히 구조화 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는 "양"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루키 초기 작의 소설에는 인물들에 이름이 잘 붙지 않는데, 이 책에서도 주인공은 이름 없이 "나"로 표현되고 있다.
(스포 주의) 줄거리 (스포 주의)
'나'는 4년의 결혼 끝에 이혼을 한 29살 남자다. 아내와 이혼한 후 귀 전문 모델인 여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귀는 뛰어난 예지력을 지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광고지에 사용한 사진에 관한 일로 우익의 거물급 인사의 비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비서로부터 한 달 안에 그 사진에 찍혀 있는 별 모양이 있는 양을 찾아내라는 협박을 받는다. 그 사진은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행방불명이 된 '나'의 친구 '네즈미(쥐)'가 보내온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귀 모델인 '그녀'와 '나'는 훗카이도로 그 양을 찾아나선다. 두 사람은 이루카 호텔에 묵게 되는데, 이곳에서 '양 박사'를 만난다. '양 박사'는 원래 중앙 정부 농림성의 엘리트 관료였으나 몸속에 양이 들어와 양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그 양이 어느 날 우익의 거물급 인사의 몸속으로 옮겨간 것이다.
'양 박사'로부터 사진 속의 배경이 된 목장을 알게 된 '나'는 '그녀'와 함께 주니타키 마을로 떠난다. 마침내 목장을 찾아낸 '나'는, 그곳이 바로 친구인 '네즈미'의 아버지의 소유였음을 알게 된다. 그 목장에서 '나'는 '양 사나이'를 만나게 되고, 한 편 예지력을 지닌 '그녀'는 뭔가를 느끼고 그곳을 떠난다.
홀로 남은 '나'는 어둠 속에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네즈미'와 오랜만에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네즈미'에게서 그 양이 우익의 거물급 인사의 몸속에서 나와 '네즈미'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왔다는 얘기를 듣는다. '네즈미'는 양의 지배를 받게 된 후 '나'가 목장에 도착하기 전에 자살했다는 사실도 말해주며 자신이 죽음을 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다음에는 무엇이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완전히 무정부적이고 혼란스런 관념의 왕국이지. 거기서는 모든 대립이 일체화되는 거야. 그 중심에 나와 양이 있지."
"왜 거부했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는 시간 위에 소리도 없이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난 나의 나약함이 좋아. 고통이나 쓰라림도 좋고 여름 햇살과 바람 냄새와 매미 소리, 그런 것들이 좋아. 무작정 좋은 거야. 자네와 마시는 맥주라든가……" 네즈미는 거기서 말을 삼켰다.
주인공 '나'는, '나'와 '네즈미'가 없어도 아무 탈 없이 돌아가고 일상이 반복되는 세계로 다시 돌아온다.
'양'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 소설에서 ‘양’은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등에 별 모양이 있는 밤색의 특별한 양이다. 우익 거물의 몸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그를 정치, 경제, 매스컴, 문화 등 온갖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했다. 그리고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우익의 거물’에서 빠져나와 다음 대상을 물색한다. 이러한 ‘양’의 메타포를 통해 하루키는 일본의 대륙 팽창 야욕 뒤에 숨겨진 힘과 연관 지어서, 사악한 동기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암시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손의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일수록 사회는 그것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우리의 자유, 내적 성장, 영혼, 깨우침, 깊은 이해, 그 어떤 것도 사회는 이야기 해주지 않는다. 대신 경제는 소비자와 시장의 관계를 말하고, 정치는 시민과 정부의 관계를 말하며, 사회는 대중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과학은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말할 뿐이다.
‘양’이 ‘우익의 거물’에서 빠져나와 다음 대상을 물색하듯, 사회는 개인에게 더 강한 사람이 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나약함이 좋다는 네즈미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 나약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모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