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회고에도 잠깐 언급했었는데, 이직을 하면서 고려했던 것 중 '하나가 플랫폼 개발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는가?' 였다. 그동안 사용자와 직접 맞닿은 서비스를 주로 개발했던 터라 서비스 뒷단에 존재하는 플랫폼은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플랫폼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니, 애초에 난 플랫폼이 무엇이지 몰랐다고 하는게 맞는 표현이겠다. 사용자와 직접 맞닿아 있으면 서비스이고, 그 서비스들에 어떤 기능을 제공하는게 플랫폼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설명하는 플랫폼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떤 플랫폼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Platform Revolution

플랫폼 레볼루션은 플랫폼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어떻게 설계할 것이며, 시장에서 동작하는 원리는 무엇이고, 수익 창출은 어떻게 해야 하며, 규제 정책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책의 추천사를 보니 MBA 학생들에게 필독서로 권해야 하는 책이라고 써있는데, 나는 플랫폼 개발실에 있는 구성원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플랫폼에 대한 가치들을 하나, 둘 알아보겠다.


플랫폼이란 무엇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배웠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플랫폼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플랫폼에 대해서 정의하고 있다.

플랫폼은 외부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 생산자와 소비자는 모두 플랫폼에 존재하는 사용자들이다. 예를 들어, Uber에서 차량을 제공하는 기사님은 생산자이고, 승객은 소비자가 된다. Airbnb에서 숙박시설을 제공하는 호스트는 생산자이고, 숙박을 원하는 게스트는 소비자이다. 이처럼 플랫폼에서 한쪽은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자이고, 다른 한쪽은 가치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구성되어 있다.

플랫폼이 무엇이고, 어떻게 동작하는지 알게 되면서 내가 속해 있는 우리팀(OO플랫폼)은 사실상 플랫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우리팀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라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플랫폼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존재해야 하고, 이 둘이 상호작용 하면서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팀이 다루고 있는 업무나 특성을 보면 플랫폼이 아닌, 아래에서 얘기할 파이프라인(pipeline)에 더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면, 플랫폼 레볼루션에서 말하는 플랫폼의 정의와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분명한지 생각해보면 좋을것 같다.

사라진 게이트키퍼

플랫폼의 강력한 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시장에서 기업들이 전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전통적인 시스템인 '파이프라인(pipeline)'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파이프라인은 가치의 창출과 이동이 단계적으로 일어나며, 한쪽 끝에는 생산자가, 반대편 끝에는 소비자가 있다. 이런 파이프라인이 비효율적인 이유 중 하나는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흘러가는 가치 흐름을 통제할 때 비효율적인 게이트키퍼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출판 산업에서 편집자는 수천개의 원고들과 필자들 중에서 몇 권의 책과 저자를 선별해서 자신의 선택이 인기를 얻길 바란다. 이런 과정은 시간이 매우 많이 들고 노동 집약적인 데다 직관과 추측에 많이 의존한다. 이와 반대로 아마존의 킨들(Kindle) 플랫폼만 있으면 누구나 책을 출간할 수 있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피드백을 받아 가면서 어떤 책이 성공하고 어떤 책이 실패할지 결정할 수 있다. 플랫폼이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확장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적 게이트키퍼(편집자)가 전체 독자 커뮤니티에서 제공하는 평가 시스템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게이트키퍼가 사라지게 되면 소비자들은 더 자유롭고 자신들에게 적합한 상품을 고를 수 있다.

피드백을 통한 품질 관리 방식

전통적인 파이프라인 기업들은 통제 메커니즘(편집자, 관리자, 감독자)에 기대어 품질을 보장하고 시장 안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의 틀을 만들어 간다. 이와 같은 방식은 초기엔 좋은 품질을 기대할 수 있지만, 확장해 나가기엔 비용이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플랫폼 대부분은 피드백 고리(feedback loop)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앱을 다운받기 위해 사용하는 Google Play Store나 Apple Store에는 앱을 다운받은 사용자들이 남긴 리뷰가 있고, 개발자는 리뷰를 참고해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개선한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인 Udemy에서 수강생이 강의를 수강하고 리뷰를 남기면, 콘텐츠를 제공한 개인은 더 좋은 강의를 만들기 위해 리뷰를 참고한다. 이렇듯 플랫폼은 강력한 통제 메커니즘에 의존하지 않고, 사용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Udemy

2015년 방문했던 Udemy. 지금은 60,000명에 달하는 강사가 있다.

변화하는 초점

Uber는 한 대의 자동차도 보유하지 않고, Udemy는 강의를 만들지 않으며, 소매 기업 Alibaba는 재고가 없다. 그리고 Airbnb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플랫폼의 가치는 대부분 사용자 커뮤니티 에 의해 생성된다. 사용자들끼리 꼭 맞는 상대를 만나서 상품이나 서비스를 서로 교환할 수 있게 해주어 모든 참여자가 가치를 창출하게 한다. 따라서 플랫폼 비즈니스는 반드시 내부 활동에서 외부 활동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플랫폼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호작용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많은 회사 안보다 밖에서 상호작용을 확대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상호작용을 기대하는 조직이라면 관심의 초점을 안에서 밖으로 옮겨야 한다.


플랫폼은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가?

  1. 어떻게 사람들의 참여를 늘리고 모든 사용자들에게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2. 어떻게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서로에게 득이 되는 상호작용을 더 쉽게 할 수 있게 만들까?
  3. 어떻게 빨리 확장할 수 있을까?
  4. 어떻게 부정적인 네트워크 효과는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네트워크 효과를 늘릴 수 있을까?

이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하는데, 바로 본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플랫폼이 정확히 무엇을 수행하며,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플랫폼의 목적은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한데 모여 서로 정보, 상품이나 서비스, 통화를 교환할 수 있게 해주는데 있다. 플랫폼은 사용자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주고 이들에게 도구와 규칙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쉽게 그리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가치를 주고받게 해준다. 마치 유튜브가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 영상 편집 툴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Core Interaction

플랫폼을 설계할 때는 가장 먼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핵심 상호작용(core interaction)'을 설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핵심 상호작용의 참여자는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자와 가치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이루어져 있다. 핵심 상호작용을 정의할 때 두 참여자의 역할은 모두 명확하게 기술하고 파악해야 한다.

참여자 + 가치 단위 + 필터 => 핵심 상호작용

그리고 이 핵심 상호작용에는 참여자(participants), 가치 단위(value unit), 필터(filter) 등 3가지 핵심 요소가 수반된다. ebay나 airbnb 같은 시장에서 제품, 서비스 목록 정보는 판매자가 만든 가치 단위이며, 이는 구매자가 수행한 검색 결과나 구매자의 과거 관심사를 기반으로 제공된다. 유튜브의 동영상, 트위터의 트윗, 링크드인의 전문가 프로필, 우버의 이용 가능한 차량 목록도 모두 가치 단위이다. 구글의 검색 엔진도 이와 마찬가지다. 구글의 크롤러가 웹을 돌아다니며 웹페이지 인덱스(가치 단위)를 생성한다. 소비가가 검색어를 입력하면, 구글은 검색어를 다른 시그널(좋아요, 리트윗, 기타 인터넷상의 포스팅이 얻은 반응) 같은 구체적 정보와 결합한다. 이렇게 결합한 정보를 가지고 필터를 구성하면, 이 필터는 검색어를 입력한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 단위를 전송할지 결정한다.

Uber's Feedback Loop Scheme

우버의 선순환에 대한 데이비드 삭스의 냅킨 스캐치

Pull, Facilitate, Match

위에서 말한 핵심 상호작용(Core Interaction)이 플랫폼을 설계하는 이유다. 가치 있는 핵심 상호작용이 많이 일어나게 하려면 플랫폼은 끌어오기(Pull), 촉진하기(Facilitate), 매칭하기(Match)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플랫폼으로 데려올 수 있어야 한다. 사용자들이 계속 들어오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피드백 고리이다. 단적인 예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소비자는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김으로써 생산자에게 피드백을 제공한다. 이러한 가치 단위 흐름이 지속해서 이어지면 더 많은 활동이 일어나고, 참여자들은 플랫폼이 더 가치 있다고 여기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말로만 하면 굉장히 쉬워 보인다) 그리고 이런 상호작용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가로막는 장벽을 없애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찍고 수정하고 공유하는데 클릭 세 번만 하면 되게끔 만들어서, 사용 장벽을 낮추고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만들었다. 반면 어떤 경우에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 생산자가 만든 콘텐츠를 큐레이션 하기도 한다. 얼마 전 많은 논란이 됐던 아이를 입양시키겠다는 글이 올라와서 새로운 가이드를 발표한 중고마켓이나, 빌려준 아파트가 쓰레기장이 되는 Airbnb의 사례가 나쁜 상호작용이 어떻게 네트워크 효과를 훼손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상호작용이 창출되도록

플랫폼에서는 대부분의 활동을 플랫폼 소유자나 관리자가 아닌 사용자들이 통제한다. 기능 A를 AA 용도로 사용되기를 기대하고 만들었는데, 플랫폼 사용자들은 AA' 용도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초기 트위터에서 특정 주제에 대한 트윗을 찾으려면 아무 관련 없는 콘텐츠 페이지를 계속해서 스크롤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크리스 메시나(Chris Messina)라는 구글 엔지니어가 처음으로 해시태그(#)를 사용하여 유사한 트윗을 발견하고 주석을 달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하였고, 해시태그가 트위터의 대들보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처럼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고, 사용자들 스스로 플랫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gift_voucher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플랫폼에 대한 이해가 명확해졌다. 책을 읽는 내내 관심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회사 아이디어 모집방에 2020, 2021 화제의 키워드인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과 웹 플랫폼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실제로 개발되면 많은 사용자가 관심을 가지고 쓸 것 같은데 채택됐으면 좋겠다. 끝으로, 언젠가 멋진 플랫폼을 만들고 있을 미래 내 모습도 상상해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