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제목만 보고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님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싯다르타라는 동명이인의 이야기다. 이야기 중간에 부처 고타마 싯다르타가 나오긴 한다.
싯다르타는 바라문 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총명하고 모두의 사랑을 받는 소년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친한 친구인 고빈다는 항상 싯다르타를 따르며 그가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 싯다르타는 스승과 부모에게 지식과 다양한 수행을 해도 갈증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데, 우연히 마을에 사문이 지나가는걸 보고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한 눈빛에 이끌려 그들의 고행에 참여하게 된다.
출가 후 싯다르타는 고행과 단식을 통해 수행을 시작하면서, 의식을 확장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배우게 되지만 결국에는 자신 자아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수행을 통해 일반 사람들도 얻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또다시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완성한 자(부처), 고타마 싯다르타를 마주하게 되는데, 친구 고빈다는 부처님의 제자로 나서게 되지만 싯다르타는 그 길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다. 싯다르타는 진정한 앎은 누군가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당신은 죽음으로부터의 해탈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해탈은 당신이 스스로 추구하고, 자신의 길을 가고, 사색하고, 침잠하고, 인식하고, 깨달은 끝에 얻은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 누구도 가르침을 통해 해탈에 이르지는 못한다.’ 오, 존귀하신 세존이시여, 당신은 깨달음의 순간에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이나 가르침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후 싯다르타는 강을 건너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고, 새로운 마을에 도착해서 기생 카말라를 보고 그녀를 통해 사랑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느낀다. 카말라와의 관계를 통해 세속적인 삶에 빠지며, 점차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십년이 지나, 싯다르타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고 과거의 선택들이 자신을 타락시켰다는 생각에 삶을 포기할 결심을 하게 된다.
강가에서 자신과 내면의 갈등을 경험하며 다시 뱃사공과의 만남의 평화를 찾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강을 내어주며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게 되고, 삶과 인간성에 대해 더 깊이 깨닫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세월이 흘러 고빈다는 뱃사공이 된 싯다르타를 만나게 되는데, 싯다르타에게 지혜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된다.
고빈다,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지혜란 찾아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으며, 그것을 다를 수도 있고, 그것으로 기적을 행할 수도 있지. 그러나 말로 표현하거나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네. 어떤 진리든 다만 일면적인 경우에만 말로 나타내고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일세.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쳤다. 바라문의 아들로서 스승과 부모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고,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사문을 선택했고, 사랑을 배우기 위해 카말라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돈과 권력 등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을 배우기 위해 상인이 되었다. 그리고 뱃사공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완성에 다가가게 된다.
강을 기준으로 탈속과 세속의 공간으로 나누어 지는데, 탈속의 공간에서는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세속의 공간에서는 자기 자신의 욕망에 사로 잡혀 있음을 나타낸다. 모든 사람들은 학교, 종교, 사회 모두 내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외부의 관심사에 집중하고 있어서 결국 허전함을 느끼게 된다. 싯다르타의 삶을 통해 내면과 외부 세계 간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통해 개인의 완성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 같다. 진리는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서 깨달을 수 없으며, 스스로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